마른 똥 막대기.
‘무엇이 부처(진리)인가’ 라는 한 스님의 물음 뒤에 나온 운문선사의 답이다.
우리는 부처나 진리는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때론 그 성스러움에 가려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진리의 세계엔 성스러움과 속됨, 깨끗함과 오염됨의 차별과 분별이 없어야 한다. 차별과 분별은 중생심이기에 진리가 깨끗한 곳이나 신성한 법당에만 있다면 그것은 보편적인 진리가 아닐 게다. 운문선사의 의도는 질문자로 하여금 부처나 진리는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마음의 문을 열어주기 위함이다.

최근 조계종 자정과쇄신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가 공개한 ‘종교평화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으로 위원장인 도법스님이 「불교닷컴」과 「미디어 붓다」에서 몰매(?)를 맞고 있다. 초안 작성에, 명법스님, 조성택 교수님, 성태용 교수님, 박경준 교수님 등이 참여했다고 기사에 밝혔는데도 유독 도법스님만 몰빵(?)당하고 있다. 땡중이라거나, 욕설, 멸빈, 심지어 공개처형하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두려운 댓글들이 등장한다.
(ㅎㅎ. 선언문 내용과 용어를 살펴보면 우리의 성대표님과 조이사님 작품 같은데, 아닌가???)

읽고 또 읽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이처럼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는지 찾아보기 위해 나름 사견(?) 배제한 눈으로 수십 번 행간의 문맥을 들췄다. 결론? ‘그게 뭐?’다.

문제제기 내용을 보면 ‘불교가 창조론을 인정한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느 구절 갖고 걸고넘어지는지 보니,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을 인정해야 하고’와, ‘나의 종교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듯이 상대의 종교 또한 우주 전체를 담고 있다’는 구절이다.

화쟁위는 선언문에, ‘열린 진리관은 이웃종교를 대하는 기본 원칙이며 대화와 소통을 위한 출발’이라고 친절하게도 분명히 밝혔는데 씨알이 안 먹힌(?) 모양이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로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든
자기보다 더 소중한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기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해서는 안 된다.
≪상응부경전 3:8 말리≫

이 경의 서술은 꼬살라국 빠세나디 왕과 말리까 왕비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대왕국의 통치자인 왕은 갑자기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생각 끝에 자기야말로 히말라야나 꼬살라 평원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결과를 얻는다. 그러면 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나 상인들은 자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까? 자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을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옆에 있는 왕비에게 물어도 되돌아온 답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데 왕과 왕비는 그들의 결론이, 붓다가 평소 그들에게 가르친 것과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기원정사로 붓다를 찾아간다.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난 붓다는 그들이 도달한 결론을 그대로 긍정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설해준 말씀이 위의 게송이다. 붓다는 왕과 왕비가 말하는 ‘자아 중심’을 그대로 인정하고 나서,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는 더 없이 소중하다고 가르쳤다.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함을 설한 것이다.
자기를 제3자의 처지에 서서 냉철하게 관찰하는 일과, 자타(自他)의 대립 속에 서 있는 자기를 떠나 그와 나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라는 가르침이다. 우리가 상대의 행동에 아쉬움을 토로할 때 흔히 꺼내는,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처럼, 나에게 내가 소중하듯이 그에게도 그가 소중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일이다. 이러한 이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애(愛)의 주장에만 귀를 기울인다면 인간 세계에 혼란상태가 올 것이고, 붓다는 우리의 세계가 그런 아수라장이 안 되게 하기 위해서는 저마다 이성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이 세계를 진정한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이성의 법칙’을 따라야 하고, 거기에서 아힘사의 덕목이 생겨난다. 이 덕목은 자타의 입장을 이성에 의해 전환시킬 때 생겨난다. 내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남들도 저마다 자기가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평화는 생겨난다.

한편, ‘타 종교계도 적극적인 자세로 동참해야 하는데 왜 우리만 꼬리 내리고 먼저 저자세를 보이냐’고 질타한다. ‘타종교의 적극적 동참’을 화쟁위가 내심 기대는 했겠지만, 그게 단박에 이루어질 거라고 기대했다면 모양새 갖추려 「공동선언」을 했겠지.

성철스님은 열반하기 직전까지 매일 밤 예불대참회문으로 108배를 하셨다고 한다. 108예참을 빠뜨리지 않는 연유를 여쭸더니, ‘일체 중생의 죄과는 곧 자기의 죄과니 일체중생을 위해 매일 백팔참회를 한다’고 상좌 원택스님은 전하고 있다.

또 부제로 단 ‘21세기 아쇼카 선언’에서 「종교평화선언」에, 왜 굳이 살육자 아쇼카왕의 이름을 걸었냐고 시비를 건다.
아쇼카왕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했다는 내용은 사실 처음 알았다. 하긴 통일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선 전쟁을 해야 하고 말로 안 될 땐 창칼을 휘둘러야 했으니 오죽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 아마도 나의 머릿속에 아쇼카왕이 전륜성왕으로만 각인되어 있었던 것은, 그동안 접했던 서적에, 강력한 불교포교정책을 펴고, 수많은 사찰과 탑을 짓고, 3차 경전결집을 주도했다는 등등 매우 긍정적인 사례들을 그의 업적으로 언급한 교육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자.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죽였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자타삿투왕을 배척했는지, 어리석은 가르침을 따라 99명의 사람을 죽인 앙굴리말라를 부처님은 어떻게 대했는지(그는 부처님께 귀의한 후에 아라한이 되었고 80인의 장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심지어 부처님의 일화도 전해진다.
부처님은 교단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 마부출신 찬나 비구에게, 그와 말하지도 말고, 타이르려 하지도 말고, 꾸짖으려 하지도 말고, 서로 왕래하거나 가르침의 자리에 참석시키지도 말라는 범단벌(梵檀罰)을 내린다.
범단벌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 집단따돌림’을 의미하는데, 천하의 부처님이 요즘말로 개무시, 왕따를 시켰다는데 이를 액면대로 해석해 더 이상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지 않아야 하나?
아난다가 전하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찬나는 ‘이 어찌 나를 죽이려 하느냐’며 기절을 했으나 끝내는 아난다의 설법으로 법안정(法眼淨)을 얻었다 한다.

그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켜서 ‘무 자르듯’ 배타시하려는 시각은 빼도 박도 못하는 ‘원죄’와 뭐가 다른가? ‘이웃종교에 대한 관용과 열린 정신이 있어야 내 종교도 발전하게 되고 진리도 더욱 빛나리라’는 아쇼카왕의 종교관에 초점을 맞추면 될 것을……. ‘多情도 病’이듯 생각도 많으면 병이 된다는 말이 와닿는다.

또 ‘이웃종교에 대한 인정과 관용이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배우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왜 스님들이 기독교를 배워야 해?’라며, 이는 중대한 오류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인다. 아니 타종교인에게도 전법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타종교 내용도 공부 안하고 덤벼들 수 있을까? 그 비법 좀 전수받았으면 좋겠다.

‘전법은 다른 종교인을 개종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녕’을 실현하는데 그 궁극적 목적이 있다’는 문구를 ‘불교 포교의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주장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이 ‘목마른 자들을 우물가로 안내해도 물을 마시고 안 마시고는 내 탓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나는 길을 가르쳐주기만 할 뿐 가고 안가고는 네 책임이다'는 말씀을 부처님의 전도포기 선언으로 이해해야 하는 게 도리인가? 이건 달은커녕 손가락도 못 보는 모양새다. 바로 뒤에 ‘나의 종교를 선전하기 위해 타종교를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지향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이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언급까지 하였는데…….

부처님의 설법에 감동하여 귀의한 니간타(자이나교)의 열렬한 후원자 시하장군에게 당부하는 모습이 경전에 전한다.
“그대의 집은 오랫동안 니간타들의 우물이었소. 그러니 그들이 찾아오면 그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님의 마지막 말씀에 더욱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나와 나의 제자에게만 시주하라. 다른 이와 그 제자들에게는 시주하지 마라. 오직 나와 나의 제자들에게 시주한 것만이 복을 가져오고 다른 이들에게 시주한 것은 복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고 들었는데, 지금 세존께서는 니간타들에게도 시주하라고 권하십니다.”

반면 교단을 분열시킨 꼬삼비 비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여쭌 사리뿟따에게 부처님은, ‘법답지 못한 소리를 한 자들은 공경할 것도 없고 공양할 것도 없다. 법다운 소리를 하는 자들만 공경하고 공양하라.’고 일갈하셨다.
이번 선언을, 단지 내가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이해하면 부족하나?

때마침 이 선언문과 관련하여 대중공사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활발발한 토론이 기대된다. 두 분 교수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