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으로 고기를 못 먹었다.   그것이 징그러웠고  입이 받지를 않았다.   쇠고기든  돼지 ‧ 닭의 고기든,  먹으면 토했다.   시절이 일제말기 식량난의 시절이었고  더더욱 동물성 단백질이 귀했던 때인지라,  어머니께서는 어쩌다 생긴 고기를 우리에게 먹이곤 하셨는데,  그럴 낌새가 보일 때마다 나는 근심이 태산 같았다.    어떻게 하면 그「난국」을 넘길까 하고 …….   결국은 야단맞으면서 먹고  이내 토하곤 했다. 작은 생선과 북어 ‧ 굴비 같은 것은 먹었는데,  그것들도 원통해 하는 듯한 그 눈알을 보며 기가 질리곤 했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 먹은 동물성 식품은 그 당시 흔했던 바다조개였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그것 보다 더하게 불쌍한 느낌이 들었다.   내 고향 개성(開城)에는  동쪽 교외 야다리(駱橋) 밑을 흐르는 개천의 조금 아래 가장자리에 허름한 도살장이 있었는데,  중학교 때 친구들과 그 작업 현장을 견학 간 적이 있다.  어둑한 실내에서,  백정이 두 기둥 사이에 묶인 황소 한 마리의 양미간을 도끼로 냅다 찍었건만,  소는 일격에 쓰러지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을 더 맞고 나서야 쓰러졌다.  바닥에는 다른 몇 마리가 이미 쓰러진 채 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무슨 귀신에 씌웠는지  나는 그 장면을 외면 않고 똑똑히 지켜봤는데,  지금도 참혹하고 불쌍했던 그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귀로에,  그 곳으로 끌려가며 체념한 듯 애잔한 음매 소리를 길게 내는 소 몇 마리와 다시 마주쳤다.  추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勃發)하고 군대 생활을 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기가 든 식사를 했다.  그래봤자 그 무렵도 가난했던 시절인지라 겨우 국에 맛을 낸 정도였는데도,  역시 역겨웠고 도살된 주인공에게 죄스러웠다.  그러다가,  휴전직후 미군 전방부대에서 복무할 때였는데,  크게 달라진 내 식사태도를 보며 스스로도 놀랬다.  의외로 고기를 즐겨 먹은 것이다.  이유인즉슨,  요리방법과  먹는 방법이 크게 달랐고  느끼는 기분이 덩달아 달랐다.  서양식 식사가 늘 그렇듯,  우리네의 식탁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국이나 찌개가 없었고  섞기는 고기도 따라 없었다.  구워 두꺼운 조각으로 접시에 담기는 스테이크(steak) 모습이 징그럽지 않았고,  곁들인 감자와 빵과 버터 등이 맛있었고,  기타의 음식도 구미를 댕겼고 …… 그랬다.  그렇지만  보다 더 깊은 이유인즉슨, 그  당시 최빈국(最貧國)이었던 한국사회에서는 군인이든 아니든 그 누구도 구경할 수 없었던 진미(珍味)와 양질의 영양식이었기에 그랬지 않았나 싶다.  당시 미국군대의 보급은 무엇이든 전방 우선이어서,  하다못해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 등 인기연예인의 위문공연조차도 전방이 먼저였다. 그러한즉슨,  질 좋은 먹거리가 넘쳤다.

말이 길어졌는데, 그런 기분과 분위기에 마취되어,  죄스러움이 실종됐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당시 GI 라고 불리던 동료미군장교들과의 어울림 및 복무분위기는 그 격이 한국군대와는 판이하게 달랐고,  배울 점이 많았다.  특히나 그때 익힌 영어회화 능력은,  그 후 내 미국유학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유학 다녀오고 제대하여 교수가 되고 하면서,  내 식성은 제 자리로 돌아왔다.  채식만 했다.  현미밥 잡곡밥에 늘 나물과 날두부와 생파 ‧ 생마늘과 조개와 그런 것들이 듬뿍 든 된장찌개를 즐겨 먹었다.  회식(會食) 때에는 두부를 갖고 가서 고기대신 먹곤 했는데,  요청해도 밥과 반찬을 나만 따로 먼저 주지 않았고 귀찮아했고 해서 그랬다.  친구나 동료들은 그런 나를 보며 탐탁찮게 여겼고,  비꼬기도 했다.  모나게,  혼자만 건강 챙기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말이다.

괴롭고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는데,  특히나 개잡아 먹는 친목회는 최악이었다.  죽이고  바르고  먹고  미시고 하면서 떠들썩하게 즐거워하는 그 잔인한 현장을 동참하며 견디는 괴로움,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문화상 참석 안할 수 없는 그 곤혹스러움 …….  동료 참석자들은 나를 배려하여 개고기상에 따로 쇠고기를 올려놓는 친절을 베풀었지만,  내게는 그게 아니었다.  그런 기호(嗜好)  불호(不好)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감히 말하건대,  죽임을 당한 그 짐승들의 절박한 공포와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내게로 옮겨지는 그런 마음 아픔의 일이었다. 그분들이 정상이었고  내가 비정상이었음을 알지만,  늘 그랬다.  난 척 하게 보여도 할 수 없다.   

눈 있는 동물에게는 다 영(靈)이 있는데,  영은 몸집이 클수록 수준이 높다.  더러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물에서는 고래가 그리고 뭍에서는 코끼리가 가장 상위의 영물(靈物)이다.  진화과정에서 각기 다른 지금의 모습으로 분화(分化)됐지만,  그런 고등 포유류(哺乳類)는 그 다가 같은 뿌리의「친족」이다. 계보(系譜)를 거슬러 살필 때,  같은 사람과(科)에 속하는 고릴라 및 침판지 등이 형제라면 소나 말이나 돼지는 사촌쯤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계를 장악한 오늘날의 인간은 아래의「친족」들조차도,  돌보기는커녕 씨가 마르도록 사냥하고 서식지를 빼앗고,  길들여 가축으로 전락시켜서 식용(食用)과 기호로 잡아먹곤 하는데,  그 전에 정상을 차지했던 어느 종(種)도 인간처럼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자연정복역사,  인간의 야만문명,  그리고 그 무리 속에 있는 내가 부끄럽다.

인간은「잡아먹기」를 당연시 한다.  아무렇지 않게 예사로 한다.  그런 배경에는,〈동물은 신이 인간을 위해서 만든 먹거리〉라는 그릇된 서양사상과 문화의 영향이 있다. 그릇된 물질문명과 더불어 그릇된 그 문화가 합리화되고 악용되면서,  오늘날의 인간은「잡아먹기」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 짓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악한지를 생각조차 안한다.  그러나 사상과 문화의 뿌리가 종교이고 그 으뜸가는 덕목이 배려라면,  한번쯤은「잡아먹기」를 당하는 상대편의 처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易地思之).  내가 그 상대편이라고 처지를 바꾸고서 …….

나는 오래전부터 내 시신(屍身)을 화장하여 자연환원 시켜 줄 것을 바랐지만,  가능하면 야생동물들에게 보시하고 싶다.  엄숙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보이지 않는 밀실에서 함수율(含水率) 10% 정도로 건조시킨 후 잘게 토막 내고,  그들 서식지 가까이에 경건하게 그리고 오염되지 않게 뿌리고 하는,  그런 의미 있고 배려 있는 장례 …….

그런데 나는 요즘,  모임마다에서 다른 분들이 눈치 채지 않게 태도를 완화했다.  그런 태도변화 이면에 그간 터득한 것이 있는 즉,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과거와 과거세(過去世)에 있은 업(業)의 소치이고,  인연에 의해 그리 될 수밖에 없는 사바세계의 질서임을 믿게 된 것이다.  덧붙여,  그 모든 상황이 전개되는 이 사바「세계」와  그것을 보는「나」는 ,  기실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닌 환(幻)임을 또한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봤자,   짐승고기는 먹는 시늉만 내고  멸치나 생선은 먹되 날것과 매운탕은 안 먹고 하는,  고작 그 정도의 수준이지만서도 말이다. 

불기2561년(A.D.2017) 7월27일

덕산 김동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