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기로 친다면 우루무치가 더 멀다. 인천공항에서 6시간의 비행 거리임을 감안하면 4시간이 소요 되는 란저우 가는 길을 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란저우(난주: 蘭州) 가는 길은 멀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고 북경이나 섬서성 서안에서 환승 하여야 하는데 너 댓 시간 기다려야 하고 다시 두어 시간 비행한 후 셔틀버스로 란저우 시내에 들어가면 족히 12시간은 더 걸린다. 아침 8시 인천 공항 출발 – 란저우 다운타운에 도착 하면 상가는 이미 철수 하고 어둠만이 낯선 여행객을 맞이한다.

란저우는 왜 가는데?

그런 길이 있을까만, 샹그릴라. 유토피아. 엘도라도. 실크로드.... 꿈을 찾아 가는 인간이라면, 없을 줄 번연히 알면서도 찾아 가는 것이 우리들 사람 아닌가! 바로 그 꿈을 찾아가는 길 중의 하나가 실크로드이고 출발점이 란저우다. 흔히 해상 실크로드를 제외하고 육상 실크로드 출발점은 섬서성 서안으로 알고 있으나 서안은 중국에서도 남쪽지방의 출발점이고 북에서 내려오는 팀과 합처 함께 최종 점검과 팀워크를 구성하여 출발하는 곳은 바로 란저우다.

감숙성 省都(성도)가 란조우. 모르긴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곳? 기장 면적이 좁고. 인구가 작은 성? 중국에서 거주 한국인이 없는 유일한 곳? 자유여행이 흔해지면서 중국 곳곳, 왼 만한 성도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기 마련인데 이곳엔 없다. 어찌 보면 그만큼 별 볼일 없는 도시가 란저우다.

실크로드를 종주 한번 하자! 자유여행객이 오기 부린다면 서안에서 출발, 란저우를 들리고, 풀 한포기 없이 시간에, 각도에 따라 색이 달리 보이는 칠체산, 해 무리에 쌓여 희뿌연한 만리장성의 마지막 관문 가욕관, 명사산 모랫바람이 별안간 날 뛰는 사막의 미술관 돈황, 그리고 해수표면 보다 낮은 고대도시 투루판까지 가면 일단, 일단락 짖는다. 바로 란저우에서 투루판까지를 황하 서쪽에 있는 길 다란 복도 같다하여 이름 하기를 河西柱廊(하서주랑) 길이라 하고 투루판에서 우루무치를 거처 천산산맥을 북으로 넘으면 천산북로. 남으로 파밀 고원을 넘으면 천산남로라니 란저우를 안 들릴 수 없는 까닭이다.,

란저우 가는 길이 멀다는 것을 잘 알기에 서안에서 내린다.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지만 배낭여행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면 쉽게 동화도 한다. 장안성 성곽에서 어설프게 아는 중국역사와 그들에 대한 저주를 함께 섞어 잘 난체도 해 보다가, 해 그름 무렵엔 회족거리에서 푸짐한양 꼬치구이와 백주, 인파 구경도 심심치 않다. 저 사람들은 스페인계. 저 사람은 아프리카계....저렇게 생긴 놈들은 중국 놈들. 아! 나야 대한민국 백성!

푸짐한 먹거리에 백주 탓인가! 허기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통하지 않아 무겁게 짖 눌러 오던 불안도 함께 사라진다. 이윽고 밤 열시. 야간 침대열차에 피곤과 불안을 포장하여 던 저 놓으면 열차는 알맞은 시간에 아침 란저우에 도착한다. 항공편으로 환승하여 란저우에 가나 서안에서 열차편으로 란저우에 가나 같은 시간에 아침을 맞이하니 인천공항 출발 24간 후다. 방 값도 벌고, 서안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지도 않으니 란저우는 야간열차로 가시라!

란저우 시가지는 동서로 길게 뻗은 두 개의 산맥 사이에 있다. 시가지는 몹시 좁고 동서로는 무척 길다. 산맥사이로 흐르는 강이 황하 상류로 짙은 누런색이다. 강 북 쪽의 산 정상 부근에 있는 白塔寺(백탑사)는 입장료가 없다. 상상을 뛰어 넘는 중국 명승지의 입장료를 생각 한다면 백탑사 무료입장은 적지 않은 행운이다. 가파른 산길을 걸어야 사찰 경내를 다 볼 수 있으나 뛰어난 설계 탓인가.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었고 곳곳에 시원하게 경관을 볼 수 있어 지루한줄 모르고 오르게 된다. 백탑사는 티벳 불교, 밀교 계통의 사찰이라고 하나 청해성 사찰에 비하면 흔적이 그리 많지는 않다. 정상에 올라 잠시 한숨 돌리고 산 뒤편을 보면, 예전엔 무척 많았다고 하나, 지금도 몇몇 남아 있는 토굴집을 보게 된다. 토굴집 뒤편으로는 입주자가 없어 통째로 비어 있는 최신식 아파트군. 그리고 사찰의 화려한 불상. 치성 드리는 群像(군상) 근근히 이어가는 토굴집 인민.... 공산주의 정치 체제에 자본주의 모순이 함께 잘 섞여 그 나름대로 하모니인가?

백탑사를 내려와 중산교를 건너면 황하 강가에 닿는다. 누릇누릇 잘 구운 군밤. 아기 주먹 만 한 대추. 갓 쩌 낸 옥수수... 강가 버드나무 아래서 주민들과 섞여 한여름 폭염을 잠시 피하고, 황하에 뛰어 들고 싶은 객기를 누르고 란저우 省(성) 박물관을 들리면 실감 있게 조형한 실크로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무었...? 女體(여체)는 신이 내린 최고의 모델이라 하지만, 박물관엔 그림을 전시 할 순 있다지만, 완전 裸身(나신)으로 그린 여체의 향연이 한 면벽을 가득 장식한다. 이크! 왠 떡? 그림 감상하는데 누가 뭐라 할까. 실체 보다 큰 스무 여장의 나신 전신상을, 사진 찍기에 바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어흠! 어흠! 뭐 군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카메라가 없기에 그렇다.

난산공원에 오르기는 쉽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정상에 이르면 이번엔 란저우 시가지를 남에서 북쪽 방향으로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다. 란저우에서 첫 날을 이렇게 워밍업 하고 내일은 황하 大石林(대석림)이다.

가난한 배낭여행은 경비를 아껴야 한다. 가난 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배낭여행이라면 힘들고 어렵게 가야 珍味(진미) 아닌가! 여행사 투어 버스를 이용하면 360위안. 개별로 가면 150위안? 버스를 세 번 타야하고 걸어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곳이 백은과 경태 사이의 조그마한 황하 강변 어는 마을. 羊皮(양피) 땟목을 타고 강을 건너고 협곡을 지나 대 석림 정상에 오르면 흙과. 모래와 자갈, 돌멩이가 함께 뒤섞인, 끝 간데 없이 이어진 수많은 봉우리를 보게 되는데 이름 하여 황하 대석림! 과히 장관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도 그랬지만.

드디어 병령사 千佛洞(천불동)이다. 오늘은 여기를 가야 한다. 풍광유람 만이 목적이 아니였기에, 함께 한 일행 중에 크리스찬이 있어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는 못 하였지만, 끓어오르는 환희를 숨기고 유가협행 버스에 오른다. 두 시간여의 버스길은 산골을 돌아가는데 내리면 아마도 작은 마을이리라. 그런데. 어렵쇼? 이게 왠일! 종점은 의외로 큰 마을 이였고 도시는 번창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

유가협에서 석굴까지 - 쾌속 모터보트로 가는 길과 차량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 중 육로를 선택. 글세... 호수를 가로 질러 두 시간이나 가는 모터보드 길은 가보지 않아 모르긴 하나 육로 선택은 아주 잘 한 듯. 어제 보든 그 석림과 또 다른 대석림 사이를 돌아 병령사 석굴군 뒤편에 내린다.

병령사는 흔적도 없다. 그 흔한 寺止(사지) 표석도 없다. 매표소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그 들도 모른다는 기계응답이 전부다. 귀때기 한 찰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를 수밖에.

이름이 천불동이라... 크고 작은 龕室(감실)에 모신 부처님.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거대 좌불상. 지붕막이 있는 와불상. 가파른 철제 사다리를 4층 높이로 올라야 도착 하는 거대 자연 동굴에 조성한 음각. 양각으로 조각한 부처님.... 千(천)이라는 숫자는 과장이 아니였다. 모르는것도 죄이긴 하지만,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저 야외 불상은 어떻게 천년을 이어 왔을까? 비가 오지 않는다지만, 이슬도 오지 않나? 바로 옆 호수의 습기도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 감동과 감격에 겨울 여운도 없다. 간간이 있는 해설판을 시원하게 읽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어찌 할꼬? 이름자 겨우 쓸 줄 아는 漢子(한자) 까막눈은 한 글자는 건너뛰고 또 한 글자는 읽기를 생략하고... 어쩌고저쩌고 읽는바에 의하면 결코 官(관)에서 주도하고, 인민을 착취하고, 백성들의 눈물로 조성한 불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佛像(불상)! 그렇다. 피와. 땀. 눈물을 쥐어짜서 만든다면 그것이 어디 불상일까? 그렇게 만들어 부처님 떠받들면 그 부처님 기뻐하실까? 토착인민을 노예 삼아 억지 조성하고는 이름하여 聖堂(성당)이라 하긴 한다만 그것이 성스러울까?

또 하나의 상념이 뒤를 잇는다. 도무지 왜 이곳일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길목이 아니다. 길목에서 잠간 벗어난 길옆도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반듯이 길로 서로 연결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이곳은 [사람 사는 곳]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흔하게 있는 중국의 천불동이 모두 이런 곳이다. 돈황 천불동. 투루판 천불동, 카스 천불동, 쿠처 천불동.... 실크로드 곳곳에서 만나는 모든 천불동은 이렇게 사람과 동 떨어진 곳에 조성되어 있다. 아둔한 머리로는 알 수 없으되 그들도 오래 보전하기 위함 아닐까?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주범이 인류이고, 사람 때가 제일 무섭다고 하니 그 [사람때]를 피하기 위하여 이렇게 오지에 만들었을까?

돌아오는 길엔 上寺(상사)에 들리시길! 천년 古刹(고찰), 기와지붕에 요사체를 포함한 전각 몇이 있는 작은 절이다. 조그만 표찰 하나가 상사라고 알리는 전부다. 찻길 옆,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까닭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해설 안내판이 없어 그나마 몇 글자 아는 한자가 없어 사찰의 내력이 궁금하였는데 주지스님이 몇 자 써 준다. 천년 고찰이며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한다. 그런데 이 주지 스님 돈 어지간히 밝힌다. 하기야 이 깊은 골짜기에, 크고 번듯하지도 않으며, 교통편도 없는 곳이니 누가 들릴까? 나 같이 할릴 없는, 머리도 몸도 빈털터리나.....

가자! 내일은 돈황이다. 오늘 밤 또 야간 기차를 타야 한다.

야간열차에서 펼칠 낭만을 기대하며 란저우 서 기차역으로 향 할 것이다. 석양은 황토 먼지에 쌓여 누렇게 노을을 날리고 석굴 앞 호수는 아직 푸르다. 처음일까, 황하에서 보는 맑은 물. 호수위로 길게 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보름 안에 천산산맥을 넘어야 하니 갈 길이 바쁘다.

2015. 8월 여행 하고, 게으름을 증명하기 위하여

2017. 2월. 불현 듯 생각나서.(善友 회원들과 함께 하지 못하여 못내 서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