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택 교수는 …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조성택 교수는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대학    원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했으며, U.C 버클리에서 인도 초기 대승 불교의 성립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    위를 받았다. 1995년 9월부터 2002년 2월까지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 비교종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    며,  2002년 3월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계간 〈불교평론〉주간, 한국학술    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인문학 단장,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현재 한국철    학회 편집이사와 우리는 선우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04년 불이상(학술 부문), 2011년 불교평론 ‘올해    의 논문상’을 수상했다.

 

1984년 해군 한 함대의 작전 상황실. 곧 있으면 전역할 한 장교가 상황실에 걸린 세계지도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메르카도르 도법으로 제작된 세계지도의 중심에는 태평양과 인도가 있었다. 냉전시대 당시 인도는 제3세계 의장국이었다. 장교는 불현 듯 호기심이 들었다. “어느 체재에도 들어가지 않다니, 인도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인도에 가야봐야겠다.”

전역한 장교는 인도철학 전공으로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인도에 대한 호기심은 곧 불교학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고 그는 이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불교학자가 된 사람. 그렇기 때문에 가장 열정적이며, 논쟁적이고, 사회에 날선 비판을 가하는 지식인. 바로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우리는 선우 이사장)이다.

사실 불교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 중 ‘조·성·택’이라는 이름 석자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2002년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 철학과 교수를 맡은 조 교수는 불교학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을 펼치며 단숨에 한국 불교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불교, 안목을 바꾸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 교수가 학문의 길에 뜻을 둔 것은 아니다. 부산으로 유학해 불교 종립 해동중학교에 진학한 조 교수는 처음으로 교육으로서의 불교를 배웠다. 부처님 전생담인 〈자타카〉를 알아갔고 삼귀의와 사홍서원 등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당시 철학 중 동양철학은 공부하지 않겠다고 조 교수는 마음을 먹었다. 직업으로 교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대학도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었다. 전공 공부보다는 인문·사회 서적을 파고들었다.

1984년 7월에 제대한 조 교수는 그해 9월 동국대 대학원 인도철학전공 석사과정으로 입학한다. 거기서 조 교수는 이기영 박사를 만났다. 이기영 박사는 불교 공부를 할 것을 권했고, 조 교수는 이에 응했다. 학문적 도반인 안성두 서울대 교수와 김성철 동국대 교수를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이들은 한국불교를 넘어서는 초기불교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한계를 느낀 조 교수는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UC버클리대학교에 진학한 조 교수는 인도 초기 대승불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 교수는 인도 초기 대승불교를 공부하면서 불교사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인도 초기 대승불교를 공부하면서 놀란 점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문 경전의 높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 인도의 대승 경전들은 거의 사라졌고, 현재 남아있는 것들은 후대로 가면서 쓰여진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도 초기 대승 경전을 한역(漢譯)한 경전들은 남아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연구하니 불교사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지식인
박사 학위를 마친 조 교수는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에 임용된다. 그곳에서도 그는 2000여 명의 교수를 대상으로 한 강의평가에서 1위로 뽑힐 정도로 탁월함을 보였다. 하지만 조 교수는 무언가 한 가지가 결여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군대에서 휴가를 나갔는데 귀대하지 못한 기분’이었다.

“미국과 유럽 교수들은 성향 자체가 다릅니다. 유럽 교수들은 지식인으로서 대중의 기대가 있고, 그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교수들은 전공분야에 대한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불교학을 선택한 이유는 불교를 통해 사회의 문제를 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의 외국인 교수 생활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죠. 모교인 고려대에서 교수직을 제안했을 때 많이 흔들렸습니다.”

2002년 한국으로 온 조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을 맡으며 인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로 부상했다.

 

▲ 2008년 인문한국 강좌에서 조성택 교수가 ‘대승불교의 기원이 무불시대의 붓다 찾기’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양한 연구 성과… 상상력의 궤적
학자로서의 그의 궤적을 보면 단순히 불교 철학만을 전공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연구의 층위와 폭이 다양하고 넓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불교 수행의 최종 목표는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초기불교의 연기론은 생태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08년 인문한국 강연에서는 붓다를 찾아서 늘 울고 다니는 상제보살을 통해 대승불교의 기원이 ‘무불시대 붓다 찾기’에 있다고 논찬했다. 또한 2011년에는 친일과 항일 이분법 속의 민족불교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해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도 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들은 조 교수의 불교학이 단순한 텍스트의 이해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저한 1차 텍스트의 이해를 토대로 역사, 사회, 문학, 철학 등 인문학 전반을 통섭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조 교수의 이 같은 원동력은 독서에서 나온다. 그는 전공 도서를 제외하고도 매월 평균 2~3권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집중적으로 읽는 인접학문 도서는 따로 있다. 인터뷰 당시 가방에는 시집 한 권과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들어 있었다.

인접학문 교수와의 교류도 조 교수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민족문화연구원 부원장 시절 ‘근대’를 주제로 매주 월요일 80명의 학자들과 세미나를 가졌다. 다양한 학문들이 바라보는 근대의 풍경 속에 불교는 없었고, 그는 근대의 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 2011년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을 받고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논문이다.

“불교학은 종합적 학문입니다. 불교 안에는 철학, 사상사, 문헌비평, 미술사 등이 총체적으로 담겨있습니다. 불교학은 종합적 인문학으로서 사유돼야 합니다. 평소의 독서량을 늘린다면 현대 산업사회가 어떻게 이뤄져 있고, 그로 인한 문제는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대를 세상의 거름이 될 수 있는 주장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학자이고 지식인입니다.”

 

지식인의 자세, 불교의 역할
지식인이 가져야 할 제1덕목을 ‘실천’으로 꼽는 만큼 조 교수의 날선 비판은 사회와 불교계 전방위로 이뤄져 왔다. 불교계의 황우석 옹호는 불교계의 콤플렉스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부터 깨달음 지상주의와 그에 따른 신비화에 대한 비판, 이명박 정부가 용산 참사와 촛불집회에 대한 민의를 헤아리기 보다는 정략에 사로잡혀 있다는 시국 선언 동참 등은 조 교수가 말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모습들이었다. 그가 보는 불국토는 소수자가 배려 받고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 교수가 강조하는 불교의 역할도 별반 다르지 않다. 21세기 대안 문명으로서의 불교, 노사·세대·남북 등 갈등의 중재자로서의 역할…. 결국 ‘불교가 이 시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가 불교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달성함으로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욕망과 성장의 피로감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또한 압축적 성장을 한 한국사회는 분야별 갈등이 매우 첨예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불교는 대안문명으로, 갈등의 중재자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단순·소박한 스님의 삶이며, 사상적으로는 ‘화쟁’입니다. 특히 개시개비(皆是皆非)의 화쟁사상은 시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젊고 생기있는 불교를 위해
최근 조 교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 중이다. 바로 불교운동가로서의 삶이다. 조 교수는 올해 1월 재가불교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는 선우’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우리는 선우’를 통해 ‘젊은 불교’를 지향하고자 한다. 그래서 추진하려는 것이 ‘청년붓다’운동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때가 35살이었고 당시 제자들도 대부분 20~30대 였습니다. 젊고 발랄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불교는 개혁적 종교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것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 에너지가 충만한 젊은 종교입니다. 한국불교는 너무 무겁고 엄숙하죠. 이제 젊고 생기있는 불교를 만들자는 게 ‘청년붓다’운동의 취지입니다.”

조 교수가 말하는 ‘청년붓다’운동은 20~30대 포교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불교를 가르치고 이를 통해 계몽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불교의 역할론적 성격이 강하다.

“현재 20~30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들의 비명은 기성세대가 잘못했기 때문에 생긴 겁니다. 이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불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불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에게 좋은 마음과 남을 위하겠다는 생각이 곧 불교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불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훌륭함’이라는 가치를 복원시키는 것도 ‘청년붓다’운동이 가지는 목표 중 하나다. 한국 사회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뛰어남’만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덕담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이런 덕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타인보다 뛰어난 사람이 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는 ‘훌륭함’의 가치를 잊었습니다. 이를 복원시키는 것은 불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종교간 소통과 인문학으로서 불교
조 교수가 가진 ‘학문을 통한 사회적 실천’의 고민은 이제 인문학으로서의 불교와 종교간 소통으로 넘어가 있다. 올해 말까지 통념적 불교에서 벗어난 새로운 불교상을 제시하기 위한 대중서적의 집필을 준비 중이다. 또한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방미해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연구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방미 일정 중에는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인 다이아나 L. 엑크 하버드대 교수와의 만남도 잡혀 있다.

“불교학은 인문학적 레벨로 올라가야하고 통섭해야 합니다. 인문학을 통한 불교 읽기를 통해서 다양한 시각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제 최근 관심사입니다. 또한 종교평화선언이 좌절된 것은 불교적 다원주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종교적인 나라 미국의 다원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한국사회에 맞는 다원주의를 찾는 것은 학자이자 불자로서의 제 역할입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물었다. “불교는 무엇이냐”고.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라고. 단순한 믿음마저도 수행으로 승화시킨 불교는 나날이 나아지는 삶을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날마다 새로워져라.(日新又日新)’ 이는 세상을 바꿀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해주고 있는 조성택 교수가 한국 사회와 불교에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현대불교신문 935호 4/10자  "연재 화엄만다라" 인터뷰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