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의 멘토를 찾아떠나는 일곱 별자리 여행 Mentor 5>
마음은 그에 상응하는 말을 끌어오지만, 말은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만들어냅니다. 부정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접근법 하나로 ‘그러나’라는 부사를 사용해 볼 것을 권장합니다.
“그는 잔소리가 많아”라고 말(생각)했다면,
“그는 잔소리가 많아, 그러나 친절한 편이야”라고 말입니다.
“천하를 둘러보니 부처의 지혜 덕상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구나.” 여러분 자신이나 혹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지들 중에서 입에서 말이 나왔다 하면 자기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나 세상에 대해 시비하고 비판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경우를 보십니까? 즉 세상이나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이기 보다는 부정적으로 인지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 말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고,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는다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우리네 사람들이 단순한 말씀 여하로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가 하면, 말씀 때문에 상처가 되고 원한이 되는 일은 참으로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말을 뱉었다 하면 비수(匕首)가 되어 세상을 괴롭히는 사람이 세상에는 더러 있단 말입니다.
단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유아기부터 충분히 사랑과 인정을 받고 충분히 원하는 일을 성취하면서 자라난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자연히 긍정적일 수밖에 없지요. 또한 사랑과 인정과 성취에 있어서 좌절의 깊이와 넓이만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시각이 부정적이라면 세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비판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것은 정도의 차이이지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정도 이상으로 부정적 시각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은 스스로 평안할리 없고 대인관계에서도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므로 평화로운 분위기보다는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어 안으로나 밖으로나 평화롭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냐(陽시각) 부정적이냐(陰시각)하는 문제는 마음공부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져야할 부분입니다. 보리수하에서 대각을 성취한 부처님께서 “천하를 둘러보니 부처의 지혜 덕상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구나!”라고 선언하신 것은 바로 세상 자체의 대긍정(大肯定)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말은 세상은 본래청정(本來淸淨)인데 중생이 주관적으로 분별-시비-평가-비판 등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 말이 운명을 좌우한다.
상대적인 분별 시비를 놓고 절대적인 평등 청정의 경지에 드는 결정적인 길이 많겠지만 이번에 권장하는 소박한 길 하나는 생활 속에서 쉽게 익히고 활용할 수 있는 간단한 단어 하나입니다. 즉 ‘그러나’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그러나’를 특수한 경우에 습관적으로 활용해 봄으로써 마음공부에 상당한 공덕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신도님은 나에게 “내 아들은 거짓말을 잘 해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그 신도님에게 “그 말씀에다가 ‘그러나’를 붙여서 말을 이어 보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분은 처음에는 어색해 했지만 끝내는 “내 아들은 거짓말을 잘 해요. 그러나, 공부는 잘 해요.”라고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몇 개 더 만들어 표현해 보라고 했더니 “…거짓말을 잘 해요. 그러나, 몸은 건강해서 고마워요.” “…거짓말을 잘 해요.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거짓말을 잘 해요. 그러나, 항상 밝은 얼굴이에요.”
그렇게 ‘그러나’를 붙여 표현을 해 본 느낌이 어떠하냐고 물으니, 아들에 대한 느낌이 훨씬 좋아질 뿐 아니라,깨달은 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안으로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밖으로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행동하는 과정입니다. 그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대체로 긍정적이라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그러하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은 습관화되고 나아가서는 성격이 되어 그 사람의 인생과 운명을 나락의 길로 이끌어버립니다.
긍정시각 발달시키기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성격이나 습관을 바로잡는 일은 최우선으로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하는 길 가운데 하나가 ‘그러나’라는 단어 활용입니다. 즉 부정적인 생각을 했거나, 부정적인 말을 했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했을 때, 가만히 ‘그러나’를 붙혀 말을 이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라는 부사로 시작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앞의 상황을 반전(反轉)시킵니다. 스스로의 생각이나 말을 살펴보아서 적정선 이상의 부정시각을 가졌다고 여겨진다면 생활수행 차원에서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합니다. 부정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접근법 하나로 ‘그러나’라는 부사를 사용해 볼 것을 권장합니다.
“그는 잔소리가 많아.”라고 말(생각)했다면,“그는 잔소리가 많아. 그러나, 그는 친절한 편이야.”, “그는 잔소리가 많아. 그러나, 매사 적극적이어서 좋아.”, “형님이 참 야속하다. 그런 정도의 부탁을 들어 주지 않다니….”였다면, “…그러나, 알고 보면 형님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지 모르지. 살아오면서 형님에게 은혜를 입은 것이 한 두 가지인가.”, 아들에게 매를 때리는 식의 행동을 한 끝이라면 역시 “아들이 여차저차하여 매를 때리기는 했다마는 그러나, 내 아들의 좋은 점이 한 두 가지인가.”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아들의 장점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부정상황에 ‘그러나’를 붙혀 말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부정적으로 사고하거나 표현을 해놓고 끝내버리면 사고나 언어가 부정적으로 고착되고 급기야는 습관 내지 성격으로 굳어집니다. 100건 정도를 연습하다보면 어떤 부정적인 상황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사고력의 탄력이 생겨나고, 놀라울 정도의 긍정시각이 발달되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그에 상응하는 말을 끌어오지만, 말은 또한 그에 상응하는 마음을 만들어냅니다. 좋은 언어 풍토는 세상을 영성적으로 성숙시키는 장치요, 토양입니다. 언어순화나 순화된 언어풍토를 조성하기위한 운동이 역사적으로 꾸준히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나 언어표현 뒤에 ‘그러나’라는 언어를 붙여보는 것을 운동에 붙여보자고 한다면 너무 섬세한 권장일까, 하면서 미소를 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