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선우 릴레이 힐링법회] 7강 도법 스님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음을 알 때 행복
생활수행과 불교의 현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한 길을 걸어온 우리는선우가 창립21주년을 기념해 이 시대 멘토 7명을 초청, 릴레이 힐링법회를 열고 있다.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고 치유법을 나누는 힐링법회 내용을 요약 게재한다.
지금 이 순간 산 생명으로 여기서 나를 살게해주는 모든게 생명 모체이자 뿌리 / 배려하고 존중하는 맘으로 살다보면 저절로 행복해져 법에 맞게 사는게 자비의 삶
도법 스님
금산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한 뒤,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10여 년간 수행했다. 1995년 실상사 주지를 역임하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발족했으며 2004년부터 5년간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전개했다. 현재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 및 화쟁위원장 소임을 맡고 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의 가르침, 나의 진리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다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가르침이고 진리이며, 이는 다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바로 실현된다. 또한 이를 곧 증명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진리가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실현되며 증명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목 마를 때 물을 마십니다. 물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목마름이 해결되죠. 단순합니다. 누구나 직접 경험하고 터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기에 단순 명료한 것입니다. 불교 역시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복잡하고 어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생 토록 불교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불교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미래는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시키는데 있습니다. 성당에서, 교회에서, 또 무종교인들에게 설명했을 때,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모든 이들을 이해시키고 공감하게 만들고 수긍하고 좋아하게 만들어야 불교가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오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불교, 바로 현실에서 증명될 수 있는 불교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불(不), 비(非), 무(無), 공(空)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온통 전도몽상(顚倒夢想)을 살기 때문입니다. 전도몽상, 다른 게 아닙니다. 관념적으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이나 말, 지식이 있다고 진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과 믿음, 꿈과 이상들은 전도몽상 현상이 많아요.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옥토끼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무지와 착각이 만들어낸 환상이죠. 그래서 부처님은 양극단을 버리라 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 그리고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은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는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물음입니다. 또 하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지요. 이 두 가지만 명료해 지면 다른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생명’입니다. 불교는 이것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종교이며 사성제 등 각종 교리도 이같은 실제로 가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표현도 내용도 다를 수 있지만 같습니다. 불교는 매우 상식적이며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내 생명’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상식적으로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할까요. 내 생명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이뤄졌는지, 어디에 존재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 생명은 내 안에, 네 생명은 네 안에 있습니다. 이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요. 바꿔 말하면 너무 당연해서 무시한 채 넋 놓고 인생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이것 역시 관념, 지식, 말로만 가능할 뿐입니다. 전도몽상입니다.
나와 너의 생명이 따로 있다면 다른 생명의 유무와 관계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태양이 없다면 내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공기와 태양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관계를 단절시키는 한 나의 생명도 끝입니다. 나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우주의 모든 것들이 참여하고 관여해서 지금 여기 이뤄진 것이 바로 내 생명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그물, 인드라망이지요. 이처럼 모든 생명들은 그물코처럼 엮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분리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그물코를 모두 꿰면 온 우주가 바로 내 생명이니, 이것이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내가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나입니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示空 空卽示色), ‘법성계’의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또 자타불일불이(自他不一不二) 등. 경전에 담긴 모든 가르침이 바로 이러한 실제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이 세상 어떠한 중생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싸우고 갈등하며 살아갈까요. 무지와 착각, 전도몽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을 통으로 외운다고 해도 이런 문제에 대한 통찰과 사고가 가능해야 불교입니다. 공기와 빛, 에너지 모든 것은 우리가 얻어 쓰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신세를 져야만 우리가 살 수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끊임없이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나눠야 합니다. 여법성(如法性). 생명의 법칙과 질서가, 또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얻어먹는 주제에 오만방자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살면 평화롭고 편안하고 홀가분하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이지요. 이토록 행복한데 더 필요한 것이 있나요. 우리가 평화롭기 위해, 사회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오직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능력을 갈고 닦으면 됩니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거룩하고 가치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학벌과 돈 앞에 쩔쩔매야 합니까? 학벌이라는 관념과 환상에 미혹되어 주객전도된 삶을 멈추고, 여기에서 눈을 뜨도록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지금 여기서 당당하게 돈에, 권력에, 지식에 굴복당하지 말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지금 여기 나를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모든 것은 내 생명의 모체이자 뿌리입니다. 지극 정성으로 배려하고 존중하고 고마워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에 맞게 산다는 것은 자비로운 삶이며 그래서 행복한 삶입니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매력적이고 특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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